fnctId=bbs,fnctNo=1618 RSS 2.0 6 건 게시물 검색 제목 작성자 공통(상단고정) 공지 게시글 게시글 리스트 당신에게 하고픈 말 작성자 dk7158 조회수 2340 첨부파일 0 넘어짐은 나아가고 있음의 반증이다.좌절은 무언갈 도전했다는 것의 반증이다. 넘어짐과 좌절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싶다. 넘어져 본 사람만이 일어날 수 있고,좌절해 본 사람만이 기쁨을 느낄 수 있다. - 책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중에서 - 묵묵한 응원 작성자 autumnks 조회수 4181 첨부파일 0 어디에서도 힘이 나올 것 같지 않은 의욕의 탈수 상태.누구에게나 마른 북어마냥 의욕이 바싹 말라가는 순간이 찾아온다. 태릉선수촌 생활 초기, 나 역시 그런 순간과 마주했다.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하고 일을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는 체력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하고 싶은 의욕이다. 그러니 내 의욕과 의지가 바닥을 쳤던 그때는 한마디로 유도를 그만두기 딱 좋을 때였다. 가뜩이나 체력도 기술도 남보다 부족한데 의욕까지 사라지다니, 태릉선수촌에서는 죽으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그때 나는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누군가 딱 한 명만 그만두라고 말해주면 옳다구나 싶어서 그만둘 것만 같았다.이 길이 내 길이 아니라는 불편한 확신.지금보다 더 늦어지면 영영 돌이킬 수 없겠다는 어두운 불안감.나에게 남은 건 그렇게 초라한 마음뿐이었다. 내 소식을 들은 친척 누나가 책을 몇 권 선물해주었다. 책을 찾아서 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어렵지 않은 내용이라 틈틈이 읽었다. 책에서 큰 위안이나 동력을 얻은 건 아니었다. 그나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책을 통해 알게 된 타우린과 달팽이즙, 과일즙 등을 많이 시켜 먹었다는 것 정도다. 입에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도 그렇게라도 하면 똑같이 선수촌 밥을 먹는 선수들보다 0.0001퍼센트라도 체력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건강식품을 사 먹었던 회사는 고객 관리가 철저해서 한두 달에 한 번쯤 주기적으로 전화를 걸어 제품을 권하곤 했다. 통상적인 마케팅이다. 나는 그 전화를 받으면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시키곤 했다. 일이 년쯤 지나자 담당자가 바뀌었다. 얼굴도 모르지만 새로운 담당자는 왠지 긍정적인 기운이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에서부터 밝고 건강한 에너지가 넘쳐흘렀기 때문이다. 보통 그런 통화는 “잘 드시고 계세요? 신제품이 나왔는데 한번 드셔 보세요”라며 제품에 관한 이야기만 하다 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새로운 담당자는 주소지가 태릉선수촌인 것이 신기했는지, 조심스럽게 “혹시 국가대표세요?”라고 물어왔다. 내가 그렇다고 답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선수촌 생활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다. 그 뒤로는 제품 이야기보다 내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 그런지, 가족에게도 하지 못했던 푸념부터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한 질책과 한탄까지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분은 태릉선수촌이 어떤 곳인지 세세하게 알지 못했고, 그곳에서 내 위치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도 당연히 몰랐다. 그래서 나와 가까운 그 누구보다도 무조건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내줄 수 있었던 것 같다. “너무 걱정 말아요. 잘할 거예요.” 아주 뻔한 응원이지만, 그때 나는 정말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다시 품게 되었다. 그분에게는 고객 관리 차원의 위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겐 바싹 마른 땅에 내린 단비같이 달콤한 응원이었다. 그분이 들려준 응원보다 내가 그분에게 털어놓았던 솔직한 이야기들이 더 도움이 되었던 것도 같다. 이전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끙끙대던 응어리를 풀어내고 나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힘이 생겼다. 그분과의 통화가 그 시절 내게 동아줄같이 느껴졌던 것만은 분명하다. 시간이 흐르고 올림픽에 나가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그분에게 전할 수 있었다.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후에는 그 회사의 사보(社報) 모델이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나는 흔쾌히 응했고 출연료로 받은 제품 다섯 박스를 그분께 드리는 것으로 작게나마 고마움을 전했다. 낯선 이에게 예상치 못한 응원을 받기도 했지만, 살면서 내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사람들은 바로 가족이다. 나와 같은 운동선수들은 대개 가족이 함께 그 꿈을 꾸기 마련이다. 돈도 많이 들어가고 남들과는 조금 다른 일상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가족의 희생이 필연적으로 뒤따르곤 한다. 그렇게 한 사람의 꿈과 목표가 온 가족의 꿈과 목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랬다. 어느 순간, 내 꿈은 더 이상 나만의 목표가 아니라 온 가족의 염원이 되어 있었고 내 경기 결과에 따라 집안 공기가 달라지곤 했다. 꿈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졌고 성공해야만 하는 이유는 더욱 명확하고 절실해졌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따뜻한 이름이 가끔은 버거울 때도 있었다. 누군가의 응원을 받는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고 가끔은 응원 덕분에 내 한계치를 초월한 힘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응원의 시간이 길어지면 응원을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조금은 지치기 마련이다. 더욱이 응원에 보답하는 성장을 하지 못할 때는 도리어 응원이 나를 짓누르는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나만 잘하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고 내가 잘해야 모두가 편안할 수 있는 상황. 결국 모든 것이 내게 달려 있다는 사실에 가끔은 숨이 막혔다.“내가 잘되는 것만 빼곤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차마 말로는 꺼내지 못한 마음을 꾹꾹 눌러 삼킬 때면 입에서 쓴맛이 진동했다. 부산에서 유도 형제로 유명했던 나와 준현이가 대학교에 입학한 뒤 전국구 선수들 사이에서 실력을 펼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다들 알다시피, 물론 나를 모르는 채로 이 책을 집어 든 독자들은 전혀 알지 못하겠지만, 준현이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유도를 해온 내 쌍둥이 동생이다.) 경기에 나갔다 하면 예선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제대로 경기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다른 선수들의 경기를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던 그때, 패배만큼 힘들었던 것은 경기장에 응원 오신 부모님을 볼 면목이 없다는 것이었다. 경기에 지고 온 날 저녁이면 아무도 주지 않은 눈칫밥을 혼자 먹고는 체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누가 쌍둥이 아니랄까 봐 준현이와 나는 컨디션이 안 좋으면 같이 안 좋고 회복되는 시기도 비슷했다. (눈칫밥을 나눠 먹는 동료가 집에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한동안 저조한 컨디션과 그만큼 저조한 성적이 이어지던 와중에 또다시 경기에 나가야 되는 날이 찾아왔다. 그날도 역시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나와 준현이는 부모님께 이번 경기는 보러 오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차피 이기지 못할 거라고, 아예 예선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고, 헛걸음만 하시는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어머님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너희가 잘하는 모습, 시상대 위에 서는 모습을 보러 가는 게 아니야. 유도하는 거 보러 가는 거지.” 그 말에 우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부모님은 늘 그랬다. 우리가 경기에 이겼을 때도 “잘했다”가 아니라 “수고했다”고 해주셨고, 졌을 때도 역시 “수고했다”라고 등을 토닥여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잘했다”는 말을 듣기 위해 어떻게든 이기려고 기를 쓰는 선수가 아니라 “수고했다”는 말을 듣기 위해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선수로 자랄 수 있었다. 내가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이 아닌 동메달을 목에 걸어 왔을 때도 부모님은 어깨를 두드리며 말씀해주셨다. “준호야, 정말 수고했다.” 내가 힘들거나 괴로울 때,내가 싫고 미울 때,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어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질 때,자신에게 “그래도 수고했다, 짜샤”라고 말해줄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부모님께 받아온 묵묵한 응원 덕분이었다. 「잘 넘어지는 연습」 - 조준호 작가 너에게 잘하라 작성자 autumnks 조회수 3751 첨부파일 0 '너에게 잘하라'는 말은 첫째 '너에게 자비롭게 대하라'는 뜻이다.'나에게 잘한다'는 것은 '나 자신과 함께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다시 말하면, 내 안에 있는 상처입은 아이에게 다가가 그에게 연민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나 자신의 약점에 화내지 않고, 약점을 사랑으로 대하고, 약점과 같이 느낀다는 것을 뜻한다.약점의 초라함은 오직 따뜻한 시선에 의해서만 변하게 된다.'자신에게 잘한다'는 것은 내 안의 불행하고 고독한 것에 마음을 여는 것이다.내 안의 보잘것없음과 사이좋게 지내는 기술을 배운다면,바로 이 보잘것없음은 축복의 근원, 아니 보다 깊은 행복의 근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잘한다는 것이,항상 어디에서나 자신을 용서하고, 자신의 실수를 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물론 항상 스스로에게 미안해하고, 죄의식으로 괴로워하고, 자기 자신에게서 나쁜 것만을 찾아내는 것 역시도 좋지 않다. 네가 영웅이 아님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라.너의 실수와 약점을 받아들이되 그것들을 물고 늘어지지 마라.하느님이 용서하셨으니, 너도 용서하라.너 자신에게 자비로워라. Buch der Lenbenskunst 「삶의 기술」 안셀름 그륀 지음 / 안톤 리히테나우어 엮음 / 이온화 옮김 / 분도출판사 펴냄 위로가 힘이 될까? 작성자 autumnks 조회수 4637 첨부파일 0 위로가 힘이 될까?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인생의 품격과 성패를 결정짓는 중대사이다.그저 자살하지 않는 이유를 발견하려는 관념의 유희가 아니다.부조리가 가득한 세상에서 존엄한 인간으로서 품격있게 살아가려면 나름의 답을 찾아야만 한다.세상은 냉혹하다.발 딛는 곳마다 예측하기 어려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나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은 없다.늙고 병드는 것을 막지 못한다.삶은 언제나 불안하다.우리는 늘 어디엔가 부딪히고 누구에겐가 상처받으며 살아간다.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실수와 잘못을 저지른다.남들은 다 잘 해나가는데 나만 헤매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진다.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아 깊은 외로움을 느낀다.마음이 온통 폐허가 되어, 차라리 죽어버리면 좋겠다는 충동에 휩쓸리기도 한다.누구에게나 인생은 그런 것이다.그러나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리 큰 상처를 받아도 다시 일어나 자신을 스스로 치유한다.반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사람은 작은 불운에도 쓰러지고 만다.·····상처받지 않는 삶은 없다.상처받지 않고 살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누구나 다치면서 살아간다.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혀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그 힘과 능력은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그렇게 자신의 인격적 존엄과 인생의 품격을 지켜나가려고 분투하는 사람만이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 -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중에서 - 무지개 - 요시모토 바나나 작성자 autumnks 조회수 3834 첨부파일 0 갖가지 일이 있었지만, 다시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보고 있다. 살아 있는 한, 언젠가는 괴로운 일도 있으리라. 그래도 또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이 눈앞에 나타나준다. 반드시. - 요시모토 바나나, 「무지개」 늦지 않았어 지금 시작해 작성자 autumnks 조회수 1799 첨부파일 0 어느 순간이든 어느 지점이든 자기가 마음을 먹고 '시작해보자'라고만 생각하면 그게 새로운 출발점이에요.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의 출발선과 한계선은 본인 스스로 긋는 셈이지요. 그러니 자기 자신에게 지지 마세요. 그만큼 강한 사람이 되세요. 자신의 출발선과 한계선을 똑같은 선상에 두지 마세요. 나는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늦지 않았어 지금 시작해, 노경원 저 처음 1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