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더 빨리 찾아올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중학생 시절부터 학교에서 실시한 심리검사 결과는 언제나 나에게 상담을 권유하였다. 하지만 상담에 대한 선입견으로 부모님께서는 “원래 다 그렇게 나오는 거”라며 내게 말씀하셨다. 상담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학교안에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었고 상담센터가 존재하는 것을 모르는 나에게 상담을 받으러 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1년이 지나서 우연히 친구를 통해 학생상담센터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처음 상담을 신청하러 가는 날에는 겁이 났다. 더 이상 나를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고, 상담센터와 정신과 상담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기에 상담실에서 무슨 말을 들을지 무서웠고 거리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깊은 우울감으로 너무 힘이 들었고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상담시간을 정하고 상담을 받으러 갔다.
나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고 말을 잘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었고 낯선 사람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상담선생님께서 먼저 말을 걸어주시고 상담을 신청한 이유와 상담실에 오기까지 시간이 걸린 이유 등을 내게 물어보셨다. 그렇게 몇 마디를 주고 받은 후에 내게 하고 싶은 말을 먼저 시작할 기회를 주셨고 내가 머뭇거림에도 조용히 기다려주셨다. 나는 횡설수설하게 많은 것들을 털어놓았다. 만약 상담자분이 큰 제스처를 보이거나 중간에 말을 끊었다면 ‘내가 방금 말한 게 뭔가 이상한가?’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면 거짓말을 하거나 축소시켜 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히려 날 바라보며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내가 말을 멈추었을 때서야 내가 한 말을 정리하시고 자신이 이해한 것이 맞는지 질문하시고 자신의 생각을 말씀하셨다. 대체로 내가 당시 느꼈을 마음에 대한 공감과 위로의 말이었다. 나는 여태 부모님이든 친구들이든 누구에게도 그 정도까지의 공감을 받아보지 못했다. 또 내가 정말 듣고 싶은 위로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이렇게까지 내가 말하는 것에 집중하고 나에게 공감해주는 사람이 처음이었기에 그 한 시간만으로도 상담을 받으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상담실에 와서 만큼은 누군가에게 말하지 못했던 내가 우울했던 모든 것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감정과 생각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어려웠다. 내가 우울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대체 왜 그런 감정이 느껴지는 건지 아는 게 어려웠고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이러한 우울감에 빠져 한 계절을 술과 잠으로 보내기도 했다. 사실 처음엔 스스로를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내 우울감을 털어내기 위해선 내가 왜 그렇게 우울해지는 지에 대해 알아야 했다. 상담 중 내가 이야기를 할 때면 상담자께서 이렇게 물었다. ‘그 때의 기분이 어땠어요? 무슨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내 모든 상황들 속에서 내 기분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지가 중요했고 상대방에게 내가 어떻게 여겨지는지가 중요해서 그 상대방의 눈치를 보는 것만으로도 바빴다. 상황이 지나고 나서야 ‘힘들다.’, ‘우울하다.’고 느낄 뿐이었다. 상담가 선생님은 내가 어떻게 느꼈고 무엇 때문에 우울했는지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게 끊임없이 질문하셨고 오롯이 스스로 말하도록 도와주셨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는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스스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4개월 동안 상담이 진행되면서 나에게 하나의 습관이 생겼다. 기분이 급격히 안 좋아지는 상황에서 ‘왜 기분이 안 좋아진 걸까?’하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다. 제 3자의 입장이 아닌 나의 입장에서 ‘내가 어떻게 생각을 했고, 그로 인해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생각해보며, 만약 내가 잘못 된 행동을 했다면 그것을 뉘우치게 만들고 동시에 내가 느낀 내 감정을 더 이해하게 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더 이해하게 되니 우울감을 느낄 때에 자책하는 생각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처음으로 기분이 나쁜 상황에서도 나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을 만든 타인이 나쁘다고 생각을 하였다. 5년이 넘는 시간을 자책하며 힘들어 했는데 4개월 만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상담자께 정말 감사하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에 비해 무척이나 짧은 시간에 많은 감정을 느꼈고 아주 작지만 반가운 변화를 느꼈다. ‘왜 조금 더 상담에 대해서 알지 못했을까?’ ‘왜 더 빨리 찾아올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하는 약간의 후회도 있었다. 아직도 학생상담센터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종종 동기들에게 학생상담센터가 있다는 걸 알리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학생상담센터를 이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지난 2년간 학생상담센터를 방문하며 상담은 고민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낮아진 자신감의 원인이 외부 환경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문제가 있음을 알게 해 주었고,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상담을 통해 자신감을 찾고 건강한 성장을 위해 학생상담센터는 꼭 필요한 곳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