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좋겠어요.
상담을 신청하기 전에 나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밑바닥을 찍은 상태였다. 그리 외향적이지 않은 성격에 어느 집단에 적응하지도, 속하지도 못한 채 도망치 듯이 살면서도 바뀌어 보려고 여러 가지 노력도 해 봤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다 눈에 들어온 곳이 학생상담센터였고, ‘가 볼까? 나를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을 몇 번이나 떨쳐내고 상담센터를 방문하였다. 첫 개인상담 시간에 상담선생님께서 상담을 통해 어떤 부분이 변화되길 원하냐는 질문에 “그냥.. 그냥 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도 좀 만나고, 다른 사람 눈치 안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좋겠어요.”라고 대답하였다.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섭고 자신감이 너무 떨어져 있었기에 솔직히 걱정이 되었다.
‘1주일에 50분씩 상담을 해서 바뀐다는 게 가능할까?’
‘상담 받는 사람들 보면 이상한 선생님도 많던데 괜히 시간만 버리는 건 아닐까?’
‘누가 내가 상담 받는 걸 알게 되면 이상하게 보겠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되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아주 좋은 분이셨다. 내가 하는 사소한 이야기도 하나하나 열심히 들어주셨고, 때로는 공감을 해 주시고 나도 몰랐던 나의 좋은 점을 말해 주시기도 하셨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내가 지금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깊은 이야기를 남에게 잘 하지 않는 내가 그토록 많이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친하고 오래 본 친구들보다 더 솔직하게 내 모습을 상담실에서 보였던 것 같다. 나도 잘 몰랐던 나를 선생님과 대화하며 ‘내가 이렇게 생각했었나?’하고 종종 깨닫게 되었다.
1주일에 1번, 50분씩. 짧다면 짧은 시간이겠지만 1주일에 1번씩 상담을 마치고 나와 숨을 한번 크게 내쉬고 후련한 마음으로 다음 수업을 가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 채 밤마다 괴로웠던 기억의 무게감을 1주일 만큼씩 덜어냈던 것도 생생하다. 그 과정들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니 조금씩 변화가 생겼던 것 같다. 가장 크게 느껴졌던 것은 잠을 설치는 일이 줄었다는 것이었다. 상담을 받기 전에는, 잠을 자려고 하면 옛날 기억들이 떠올라 괴로웠다. 성적이 좋지 않다고 엄마에게 맞았던 기억,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들어오시던 아빠에 대한 기억 등이었다. 과거의 기억에 빠져 허우적대며 잠들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기억의 당사자들에게 화가 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깊이 잠이든다. 잠을 잘 자니까 피곤할 일이 없어서 일상생활이 편해졌다. 그 다음으로 크게 느껴졌던 변화는 사람 만나는 게 무섭지 않아졌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자신감이나 자존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상담 전에는 수업을 가는 길에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며 지나가면 ‘혹시 내 욕을 하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웠고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도 꺼려했는데 자신감이 생기고 자존감이 올라가면서 그런 일이 없어졌다. 지금은 ‘내가 남들에게 관심이 없는 만큼 남들도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어.’ 라는 생각을 하면서 남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은 채 어디든 잘 다니고 있다. 남들 눈치 보느라 못했던 일들도 하나씩 해 보았다. 탈색도 해 봤고, 엄청 튀는 색으로 염색도 해 보고, 국토대장정도 신청하였다. 조별과제 발표를 맡아서 교실 앞으로 나가서 발표도 했는데 성공적으로 끝이 나서 이전에 나라면 생각해 볼 수도 없는 일이라 정말 뿌듯했다. 마지막으로 크게 다가왔던 변화는 무엇이든 간에 무언가를 하는 시간이 늘었단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누워서 ‘나 왜 이러고 있지..’ 라는 자괴감을 도돌이표처럼 반복하는 일이 많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하면 되지, 네가 안 해서 그런 거 아니야?” 하고 충고를 듣기도 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무기력하기도 했고 잘 해내지 못할까봐 하는 두려움에 무언가를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실수할까봐 겁이 나고 두렵다. 하지만 차근차근 작은 것부터 실천해가고 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사소한 변화들이 있었는데 이런 수많은 변화는 상담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논리적으로 얘기해주시고, 생각지도 못했던 관점으로 얘기해주시기도 하고, 그에 대해 생각해 보라며 시간을 주지 않으셨다면 나는 아마 꽉 막힌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상담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이후에도 나와 같은 학생들을 학생상담센터를 방문해 도움을 받기를 바란다.